2018년 10월 28일 일요일

일본 사회 : 정의가 없다

정의는 보편적인 유산
정의 Justice 는 동서고금의 모든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것은  재화의 분배와 관련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사회나  공정 공평 정의를 추구한다.     정의를 위한 투쟁은  중세 봉건시대 뿐 아니라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로빈후드와 정의
로빈후드는 영국 중세시대의 영웅이다.  그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귀족관리들의 폭정에 맞서 싸운다.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수호지 영웅들과 정의
송강을 비롯한 수호지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정부의 폭정에 대항하여 민란을 일으킨다.  부의 균등한 분배를 위해 싸운다.
 
홍길동과 정의
의적 홍길동은  부패한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맞서 싸운다.    사찰과 관청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준다. 
 
필리핀 여성들과  정의
최근에는 필리핀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   필리핀인들은    위안부 문제를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이렇게  사회의  불공정이나 불의에 대한 분노와   폭정에 대한 저항은 인류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민중 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는 일본
그런데  예외적으로  일본 역사에서는  정의를 위한 투쟁을 발견할 수 없다.    약자의 편에 서서,   선의의 편에 서서 악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집단과  싸운  영웅 이야기가  없다.     민중이 주도한   저항문화도  없다.
  

사유 재산을 마음대로 몰수
일본에는 개인 저축을 강탈하는 법이 있다.  즉 10년 이상 사용되지 않은 휴면 계좌는  정부가  계좌의 자산을 몰수할 수 있다.  이것은 사유 재산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이다.   교토 일부 신용금고 에서는 70세 이상이면 출금도 할 수 없다.   자기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노인이 죽으면 그 계좌의 돈은 자동으로 정부 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법이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다.  정의감도  문제 의식도 없는 일본국민은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사실 일본인은 정의가 무엇인지 모를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그래서   일본 사회 어디에서도 사회 정의 Social Justice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 ' 라는 구호를 들을 수 없다.   일본 사회는  뭔가  비정상적이다.

또한  일본인은  약자나 소수자의 편에 서 본 경험이  없다.    강자에게는 복종하지만 약자나 소수자는 무시한다.    그래서 이지메가  많이 일어난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는 데 인색하다.    그래서 기부 문화가   없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 주는 데도  소극적이다.     그래서 의인이 없다.  

정의는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  필수 비타민과 같은 작용을 한다.     정의가 없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는    정의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걸까?
 
Ref)
일본 사회에서  사회 정의라는 말을 일상 대화에서 들을 수 없다.   사회 정의에 대한  토론도 없다.    어디에서도  정의에 대한 관심이나   탐구를 발견할 수  없다.   --   Routledge International  handbook of social justice
일본에서는 사회 정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 What is social justice ?
일본에는   공정성이라는  의식이 없다   ---  日本では公平であろうとする意識がまったくない
일본인은  소수자의 편에 서 본 경험이 없다  -- battling social injustice
일본인은 가난한 사람이나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데 인색하다   ---   The Pew Global Attitudes Project 
일본은 여성을 강제로 AV에 출연시켜 뽀르노 생산을 하는 인권침해가  심한 나라 --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1426644
40만 년 전  초기 인류는  생존을  위해 협동과 협업을 했다.  이  진화 과정에서   ' 공정성 ' 개념이 탄생했다. .... 10만년 전 호모사피엔스는  공정성을 더욱 체계화한  ' 정의 '  개념을 만들어 냈다.    --   <도덕의 기원 >  


2018년 10월 2일 화요일

너무나 일본적인 일본영화

영화 철도원

철도원은 1999년 일본에서 개봉되어  4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다.     영화 철도원은 일본인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일본남자들이  ' 저거 내  이야기야 ! ' 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즉 주인공 철도원의 삶은 곧  일본인의  삶이였던 것이다.

줄거리
주인공 오토마츠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철도원이 되어 평생을 철도 회사에서 근무했다.    말년에는  홋카이도에 있는  작은 기차역에서 역장으로 근무한다.    오토마츠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제 시간에 나와  열차를 기다린다.   누가 보든 말든  근무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   일이 끝나면 항상 근무일지를 작성한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오로지 철도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한다.  

결혼 후  17년 만에  낳은 딸  유키코가   심한 독감에 걸려  병원에서 죽는다.    아내가 딸을  병원에 데리고 갈 때도,   딸이 죽어서  돌아올 때도 오토마츠는  무심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기차 승객을  모두 안내한  후에야   비로서 아내와 죽은 딸을   대면한다.     아내는 이렇게 원망하며 탄식한다.    " 당신은 딸이 죽어 돌아와도  깃발을 흔들며  맞이하는군요 ! "
딸이 죽은 날도   오토마츠는  근무일지에  ' 금일 이상 무 '  라고 적는다.

아내가 병에 걸려 병원에서 죽어 갈 때도  오토마츠는 교대할 사람이 없다며  병원에 가지 않는다.   마지막 일이 끝난 후에야   이미  숨진 아내가 있는 영안실에 찾아간다.   친구의 아내가  오토마츠를 보고  " 어떻게  아내가 죽어가는  데 달려 오지 않았냐?  " 고 비난한다.   오토마츠는 죽은 아내를 보고도  울지 않는다.      친구의 아내가   "  당신의 아내가 죽었는데....  어떻게 울지도 않느냐? " 며  질책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  나는 철도원이므로 집안의 사사로운 일에 울 수 없다. "

오토마츠는 철도원으로 평생을 보낸 지난 날을 회상하며  "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 라고 말한다.   어느날 오토마츠는   눈이 뒤덮힌 역 플랫폼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철도원 오토마츠는 누구인가?
오토마츠는  회사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원이다.    엄격한 규칙에  길들여진 오토마츠는  융통성  없이  로보트 처럼  일한다.

딸이 죽었을 때도   동료들에게 부탁해 잠시 자리를 비우고   딸을  보러 갈 수도 있다.   아내가 병원에서 죽어갈 때도   회사에 교대 인원을 요청하거나,    휴가를 내 병원에 가면 된다.     그러나 오토마츠는   가족보다 회사 일을 우선시한다.   자신의 권리나 가족의 행복을  기꺼이 희생한다.     일본인은 집단에 대한  충성과 자기희생   신민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오토마츠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요구하지 못한다.    그는  국가나  회사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 본  적이 없다.   무의미한 규율이나   회사 정책을 비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본 사회는 비판이나 항의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토마츠는  자신의 무관심 속에  죽은 딸을  보고도  슬퍼하지 않는다.   자책하지 않는다.  외롭게 죽은 아내를 보고도 울지 않는다.    그는  " 나는 철도원이므로 집안의 사사로운 일에 울 수 없다. " 고  말한다.    일본인은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표현하지  못한다.

오토마츠는     " 철도원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나의  임무요 본분이다 " 는  굳은 믿음을 갖고  살았다.     철도원 신분에 만족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멸사봉공의 자세로  최선을 다했다.     비록   딸과   아내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 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자신도 플랫폼에서 쓸쓸하게 죽지만,  회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철도원 오토마츠는   착한 노예
오토마츠는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포기하고    집단을  위해 사는  착한 노예다.    자신이 노예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그는  자주성 자율성을 잃어버린,   집단에 종속된  존재에 불과하다.      철도원이야 말로  일본 지배층이 원하던  모범적인 일본인이다. 

모범적인 철도원를 본받아야 한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철도원이 보여주는  직장에 대한 헌신,   충성심과 복종심에   매료되었다.   주인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는   자세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자국  국민이    철도원을  본받기를   원했다.   보도사기꾼 기레기들이  앞장서   대대적으로  떠들어댔다.   교수 학자 전문가 같은 종자들도  철도원  찬양에 열을 올렸다.   " 선진국이 되려면  철도원을 배워야한다 " 는 개소리가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특히 노조파업이    일어나면   기레기들이   튀어나와   자국 노동자들을   꾸짖으며   이렇게 울부짖었다.     " 일본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지 않는다,    회사를 먼저 생각한다,   목숨바쳐 일한다, ......  "

국민을 ' 노예 철도원 ' 으로 만들려는   지배 엘리트들의  선동은   대중의 의식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한국인은 일본을 배울 필요가 있다

2018년 6월 18일 월요일

일본인의 정신세계

일본인의 정신세계
 

일본인을 일본인답게 만드는  정신,   가치관 혹은  생각이    몇가지 있다.   그것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없는 일본 특유의 것이다.   예를들어   일본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 책임을 강조한다.   " 니가 가난한 것은 니 책임이다.  사회에  손을 벌리지마라! "  고  가난한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이런  자기책임론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힘을 가진  집단이   의도를  갖고   만들어 일본국민의 뇌 속에 집어넣은 것이다. 

컴퓨터 주인은  자기가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하드디스크에 저장한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주인(지배층)은   자신들의 이익과 필요에  맞는  프로그램(생각)을  만들어  국민 뇌 속에  깔아놓는다.    당연히 국민을  세뇌시켜   노예 처럼 부려먹기 위한 것이다.    일본 국민의  두뇌 기억장치 속에 깔려있는 생각들은 크게

자기희생론(충성론)
자기책임론
정신론(근성론)
은혜론
부품론
비국민론
혐한론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기희생론(충성론) --  집단(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
집단의 영광과 번영을  위해  희생하라는 것이 자기희생론이다.   자기희생론은  봉건시대에 뿌리를 두고있다.    그것은 사무라이가 지켜야하는  중요한 규범 중 하나였다.    근대화 시작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은 국민에게   국가를  위한  충성과 자기희생을  강요해왔다.      지배층은 자기희생론을 내세워 국민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국가(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러 출격하는 자살특공대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를  한 후에도   변한 것은 없다.    지금도 자기 희생론은  수 많은 애니 만화 드라마 영화의   주제로 활용되고 있다.     지진이나  쓰나미가  발생하면,  다른 사람들을 구하다 희생되었다는 아름다운  자기희생을 다룬   이야기가  소개된다.       아직도 지배층은    자기희생론을  떠들어댄다. 
 
오늘날  자기희생론은   일본 기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가치관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 자신의 모든 것을 회사에 바쳐야 한다 ' 고  늙은 상사들이 충고한다.      일본에서 근면이란  단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사를 위해 목숨바쳐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시간 일하다 죽는 과로사는 (목숨바쳐)   희생했다는  증거다.

100시간이 넘는 잔업과  상사에 시달리다 자살한 여직원
일본사회는  집단을  먼저 내세워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다.   개인의 행복,   자유나 권리를 짓밟는다.

자기책임론 
이상하게  일본에서   자기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강하다.     가난한 사람이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면,    " 니가 못나서 가난한 것이니, 나라가 너를 구제할 필요가 없다.. "  는  차가운 반응이 돌아온다.
가정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 니 가족 문제는 니가 해결해야지... " 라며 동정 보다는 자기 책임을  강조한다.   강간 피해자에게는 " 그런 옷차림으로  그런 곳에 갔으니...  다  니 책임이다 " 고 잘라 말한다.    심지어 피해자 본인 뿐 아니라 가족까지 비난한다.
동정심(인정)이 부족한  일본사회
일본인 2명이  이슬람 국가(IS)에 납치되었을  때도,   " 자기 발로 스스로 위험한 곳에 간 것 아니냐.. ."  며  이들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었다.    언론은   " 무모한 행동으로 국가에 폐를 끼쳤다... "   며  개인책임으로 몰고갔다.    정부도  테러 세력과 타협은 없다며  구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자국민의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이렇게 일본 사회는  가난,  안전,  재난, 실업등  정부나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걸핏하면  그  책임을   개인이나 가족에게  뒤집어 씌운다.    개인은 온갖 의무와 책임을 진다.   그러나  정치인 관료 같은 지배 엘리트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기책임론  앞에서  힘없는 약자는   도움을 청할 곳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 없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침묵할 수 밖에 없다.   일본 사회는 아주  차갑다.
정신론(근성론)
오랫동안 일본에서 정신론이  강요되고 있다.  정신론은 물질적 혹은  물리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부는   정신론을 이용해 병사들을 최대한  부려먹었다.  전쟁터에서 식량 탄약등 모든 것이 부족한데도  무조건  정신력으로  버티라는   황당한 명령을 내렸다.   학교에서는 정신력을 키운다는 이유로  남녀 학생들에게 상의를 벗고 수업을 받게했다.
전쟁이 끝난 후,  정신론은  기업에서  맹활략을 하고 있다.  경영자는 정신론을 내세워 직원을 독촉한다.   기합과 근성을 강요한다.   " 이를 악물고  정신력으로 버텨라,   포기는  절대 안된다,  그런 나약한  근성으로 무엇을 할 수있냐.... "  등등 직원을  극한으로  밀어부친다.    정신론은  직원을 최대한 부려먹고 착취하기 위한 채찍이다.    정신론에 세뇌된  종업원은  맹렬사원이나 기업전사가 되어  노예처럼 일한다.    사실 일본의 부wealth는 국민을 착취해서 만든 것이다.
 
은혜론
천황이 일본국민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국민은 천황에게 충성을 다해 보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은혜론이다.     은혜론은 순진한 국민을 노예로 만드는  술책에 지나지않는다.   은혜론에 세뇌된 국민은  천황에  충성과 복종을  다짐한다.
기업 경영진을 위한 은혜론도 있다.      경영진이  종업원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논리다.     따라서 종업원은   그 은혜를 갚기위해 잇쇼겐메이(목숨  바쳐)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남에게 신세졌을 때   언젠가  그만큼  갚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는다.     신세(은혜)는 마음의 빚이다.  그래서  일본인은 남에게 신세지거나 도움 받는 것을 싫어한다.

부품론 ( 본분론 )
일본인에게는  신민의 본분이라는 개념이 있다.     본분이란   " 사회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고,  그것을 잘 수행하는 게 나의 임무다 " 라는 개념이다.   사회 집단의 부품으로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한다라는  부품론의 역사는 봉건시대에서 출발한다.
 " 사무라이들의 강압으로 일본인들에겐 자기에게 알맞는 자리 지키기가 정착되었고,  자기 신분에 만족하고 충실하면 해를 입지않는 질서를 보장받았다........ "  ---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본분론에 세뇌된 일본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  정치는  신분이 높은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다....   나라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고  항의하면 안된다.   그런 것은 윗 분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내 분수에 맞게  내 역할만 하면 된다...  "   
평민은 감히  귀족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인이 되어  나라를 바꾸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흙수저는 신분 상승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신분  세습이 전통이다.  평생 망치나 두두리고, 우동이나 만들고,   스시나 만드는 것이  자기 분수요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비국민론(매국노론)
비국민론은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이것은 사실 공갈협박이나 다름없다.   2차세계 대전 때,   정부 정책에 잘 따르지 않거나  불평 불만을  하는  사람들을  비국민으로  비난했다.   지금도  정부나 회사등에  비판적이거나, 비협조적인 사람은 비국민(매국노)로 낙인찍는다.     집단과 다른  생각을 말하거나  의문을 갖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비국민으로 낙인찍어  집단에서 배제한다.    비국민으로 찍히지 않기 위해 모두가 눈치를 보며 조심한다. 

혐한론
오래 전 부터 일본은   중국이나 한국을   깔보거나  경계했다.   100년 전  유명한 지식인   나쓰메 소시키가   "  중국인이나 조선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 "  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금도 한국을  깔보고 조롱하고  중상모략하고 비난하는   혐한론은 일본인 최대 관심사다.   자국을 비판할 수 없는 일본종자들은   마음껏  한국을  비하하면서 큰 기쁨을 느낀다.   한국인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우월감을 맛본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수십만 개가 넘는  혐한 사이트가 있고    인기가 아주 높다.   야후나 2ch에는  혐한 댓글이 차고 넘친다.   혐한 책이나 잡지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로스앤젤레스)    체포된 매춘부의 90%가 한국 여자
   

아침 5시부터 TV에서 혐한 프로그램(붉은 색)을 방송한다.

혐한론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든 것일까? 
사실 반한,  혐한 선동은   지배층이  기획한 프로파간다이고   정치 마케팅이다.     혐한론을   통해  불평 불만이 지배층에 집중되지 않게  외부로 돌린다.     또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좋지않은  사실,  자신들의 문제점  결함 단점 등을   한국에  뒤집어씌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춘다. 


희생론이나 정신론  같은 것들은  억압적인 프로그램(생각)이다.   그것들은   우울 불안  비참함 불쾌감  불만 등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반면  혐한론은  이런  마음에  쌓인  부정적인 감정을    밖으로 배출시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혐한론은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Ref)
" 1944년 사이판에서 3000여명이 옥쇄했다...... 항복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더할나위 없는 기쁨이고 유쾌한 일이다.  충에 죽는 것이 신하의 큰 법칙이다. 이만한 기쁨도 없다. 황국신민은 충효의 도를 위해 기꺼이 죽어야한다.. "  도야마 미츠루  from 신국 일본의 어처구니 없는 결전생활
오래 전부터 일본은 국민에게 자기희생과 무조건 충성을 강요했다.   자기희생론은  현대 일본 사회에  그대로 남아있다   --   The Role of Bushido in modern Japan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하면  자기 역할(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   Critical Thinking and Modern Japan 
해외 일본학 연구원들은  자기책임론은  일본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  「自己責任論」というの日本独特のもの.....
"  지금의 일본은 자기책임이 원칙이다.  누구도 구해주지 않는다.  이런 자기책임론이 베이스인 일본에서 나가든지,  국적을 바꿀 수 밖에 없다..,  이게 사회의 논리다...  "   ---  하시모토 오사카부 지사
가난한 사람을 도와 줄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인  ---  일본인의 배려
일본 인터넷에는  한국을  비하 조롱 매도하는 글이 넘쳐난다  --   한국을 스토킹하는 일본
일본방송의 중요한 컨텐츠는  혐한론   --   예능 프로그램의 혐한

2018년 6월 1일 금요일

생각이 없는 일본인

자기 생각이나 의견이 없다. 
일본인은  자기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 는  표현 보다는   주어  ‘나’ 를  빼고  그냥  " 이렇게 생각된다 (오모와레루) " 는 수동태  표현을 훨씬 많이 쓴다.   <생각된다>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 집단의 지도자(리더나 상사)가 그렇게 생각한다' 는 뜻이다.  즉 집단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받아들인다.    

Japanese are NOT  allowed to have their own thoughts or  opinions.
Japanese think  only what they are taught to think.
일본은 집단을 위한 하나의 의견을 만들고 개개인은 그 의견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따른다.  집단의 공론에 반대하면 이지메를 당하거나 집단에서  쫒겨난다.
자기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 생각과  다를까봐  항상 걱정한다.  그래서 항상 주위  분위기를  살핀다.   ' 후쿠시마 방사능은 문제가 없다 ' 는 의견이 대세라면,  자신의 생각을 거기에 맞춘다.
판단이나 결정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가능하면  자신의 독립적 판단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후쿠시마 방사능에 피폭될 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자기 스스로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피난을 갈 것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그냥  정부의 지시에 따른다.  또  일본인은  자기 스스로 결정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결정은 상사(리더)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하지 않는다 
일본에는   봉건  독재 정치 , 부패한 정치인들, 후쿠시마 방사능,  양극화....등등  커다란  문제가  많다.   또 장시간 노동 같은  생활과  밀접한   이슈들도 많다.   그런데 일본인은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 친구나 주위 사람들과 토론하지 않는다.   아이디어, 의견이나  팩트등을  자유롭게  주고받지도 않는다.
" 이거 문제 아냐? ....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이거 바꿔야 되지 않냐..."   등등...  이런 이야기 자체를 꺼린다.  적극적으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방사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민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싫어한다.   일본 사회에는  토론과 논쟁이 없다.
주장, 요구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억압적인 위계질서에 위축되어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한다.  지진이나 태풍으로 커다란 피해를 입어도  정부의 지원을  조용히 기다린다.   불평하지 않는다.   배가 고파도 목이 마려워도,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항의하지 못한다. 
표현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어릴 때부터 속마음을  숨기도록 교육받는다.   속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천시한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명확히 표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애매모호하게 말한다.    진짜로 느끼는  감정은 속에서 억제되고  대신 ‘작의적 얼굴’로 자신의 느낌 감정을  나타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기뻐도 잘 웃지 않고,  슬퍼도 울거나 슬픈 표정을 짓지 않는다.  장례식에서도  큰 소리로 울지 않는다.   억압적 집단 규범 때문에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다.  대신 혼자 있을 때 슬퍼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도덕적 윤리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선악 개념이 별로 없다.  한 사람의 자주적  인간으로서의  양심이나 정의감도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집단이 정한 규율 규범이다.
" 일본인은 악의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이 결여되어있고  악의 문제를 인생관으로 승인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  ---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그래서 일본인은  개인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그냥 힘이 있는 리더의 지시를 순순히  따르거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그냥 따라한다.   
승객이 전동차와 충돌, 선로에서 사망.  주위 사람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있다.

 
비판이나  반대하지 않는다
일본 사회에서  비판이나 소수 의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집단과 다른  생각을 말하거나  의문을 갖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이유를 붙여  집단에서 배제된다.  이론을 펼치면 그가 속한 집단,  심지어 친구와 가족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받는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정치인, 관료, 상사의 말에 복종한다.  의문, 의혹을  제시하거나  반대하거나 논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항상 의식한다
이지메를 당하지 않기 위해  항상  신경을 곤두 세우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항상 의식해야 한다.  옳고 그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생각 말 행동이 같아야 한다.    자기의  생각을 내세우거나 반문하면 안된다.  개인의 철학, 양심, 주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한 행동 기준이다.
 

개인의 정체성이 없는 사람들
일본인은 생각의 자유, 인격의 자유, 개성의 자유를 빼앗긴  존재다.   자율성을 잃어버린  존재다.   스스로 결정하기를 회피하는  의존적·종속적 개인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복종하고,   메뉴얼대로 따라가는 보수적 수동적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오랫동안 일본 지배층은  국민을  이렇게  세뇌시켰다.  " 생각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 생각과 판단은 우리가 할 테니 니들은 시키는 대로 움직여라. "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품거나,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DNA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제거되고,  복종하는 DNA를 가진 사람들만 살아 남았다.   


Ref)
일본인의 정신구조는 소나 돼지같은 가축과 비슷하다. --  < 닥쳐라 일본인 >
Critical Thinking and Modern Japan
Japanese and American Education ; Attitudes and Practices
Instead of learning about the importance of freedom of speech and independent thinking
생각 행동 태도 생김새등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까봐 항상 걱정한다 --  What is Taijin Kyofusho
개인을 억압, 강요, 감시 통제하여  길들인다... 개인의 정체성을 말살한다....   ---  일본 사회는 거대한 교도소  
" 국민 중에는  1%의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99%의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어쨌든 1 표는 1 표 이니까 그 1 % 사람들 말고  99%의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들려준 것이 선거에서 늘 이겨온 방법입니다  "  --->   고이즈미 신지로 세습의원이자  환경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