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8일 일요일

일본 사회 : 정의가 없다

정의는 보편적인 유산
정의 Justice 는 동서고금의 모든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것은  재화의 분배와 관련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사회나  공정 공평 정의를 추구한다.     정의를 위한 투쟁은  중세 봉건시대 뿐 아니라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로빈후드와 정의
로빈후드는 영국 중세시대의 영웅이다.  그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귀족관리들의 폭정에 맞서 싸운다.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수호지 영웅들과 정의
송강을 비롯한 수호지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정부의 폭정에 대항하여 민란을 일으킨다.  부의 균등한 분배를 위해 싸운다.
 
홍길동과 정의
의적 홍길동은  부패한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맞서 싸운다.    사찰과 관청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준다. 
 
필리핀 여성들과  정의
최근에는 필리핀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   필리핀인들은    위안부 문제를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이렇게  사회의  불공정이나 불의에 대한 분노와   폭정에 대한 저항은 인류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민중 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는 일본
그런데  예외적으로  일본 역사에서는  정의를 위한 투쟁을 발견할 수 없다.    약자의 편에 서서,   선의의 편에 서서 악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집단과  싸운  영웅 이야기가  없다.     민중이 주도한   저항문화도  없다.
  

사유 재산을 마음대로 몰수
일본에는 개인 저축을 강탈하는 법이 있다.  즉 10년 이상 사용되지 않은 휴면 계좌는  정부가  계좌의 자산을 몰수할 수 있다.  이것은 사유 재산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이다.   교토 일부 신용금고 에서는 70세 이상이면 출금도 할 수 없다.   자기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노인이 죽으면 그 계좌의 돈은 자동으로 정부 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법이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다.  정의감도  문제 의식도 없는 일본국민은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사실 일본인은 정의가 무엇인지 모를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그래서   일본 사회 어디에서도 사회 정의 Social Justice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 ' 라는 구호를 들을 수 없다.   일본 사회는  뭔가  비정상적이다.

또한  일본인은  약자나 소수자의 편에 서 본 경험이  없다.    강자에게는 복종하지만 약자나 소수자는 무시한다.    그래서 이지메가  많이 일어난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는 데 인색하다.    그래서 기부 문화가   없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 주는 데도  소극적이다.     그래서 의인이 없다.  

정의는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  필수 비타민과 같은 작용을 한다.     정의가 없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는    정의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걸까?
 
Ref)
일본 사회에서  사회 정의라는 말을 일상 대화에서 들을 수 없다.   사회 정의에 대한  토론도 없다.    어디에서도  정의에 대한 관심이나   탐구를 발견할 수  없다.   --   Routledge International  handbook of social justice
일본에서는 사회 정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 What is social justice ?
일본에는   공정성이라는  의식이 없다   ---  日本では公平であろうとする意識がまったくない
일본인은  소수자의 편에 서 본 경험이 없다  -- battling social injustice
일본인은 가난한 사람이나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데 인색하다   ---   The Pew Global Attitudes Project 
일본은 여성을 강제로 AV에 출연시켜 뽀르노 생산을 하는 인권침해가  심한 나라 --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1426644
40만 년 전  초기 인류는  생존을  위해 협동과 협업을 했다.  이  진화 과정에서   ' 공정성 ' 개념이 탄생했다. .... 10만년 전 호모사피엔스는  공정성을 더욱 체계화한  ' 정의 '  개념을 만들어 냈다.    --   <도덕의 기원 >  


2018년 10월 2일 화요일

너무나 일본적인 일본영화

영화 철도원

철도원은 1999년 일본에서 개봉되어  4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다.     영화 철도원은 일본인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일본남자들이  ' 저거 내  이야기야 ! ' 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즉 주인공 철도원의 삶은 곧  일본인의  삶이였던 것이다.

줄거리
주인공 오토마츠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철도원이 되어 평생을 철도 회사에서 근무했다.    말년에는  홋카이도에 있는  작은 기차역에서 역장으로 근무한다.    오토마츠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제 시간에 나와  열차를 기다린다.   누가 보든 말든  근무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   일이 끝나면 항상 근무일지를 작성한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오로지 철도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한다.  

결혼 후  17년 만에  낳은 딸  유키코가   심한 독감에 걸려  병원에서 죽는다.    아내가 딸을  병원에 데리고 갈 때도,   딸이 죽어서  돌아올 때도 오토마츠는  무심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기차 승객을  모두 안내한  후에야   비로서 아내와 죽은 딸을   대면한다.     아내는 이렇게 원망하며 탄식한다.    " 당신은 딸이 죽어 돌아와도  깃발을 흔들며  맞이하는군요 ! "
딸이 죽은 날도   오토마츠는  근무일지에  ' 금일 이상 무 '  라고 적는다.

아내가 병에 걸려 병원에서 죽어 갈 때도  오토마츠는 교대할 사람이 없다며  병원에 가지 않는다.   마지막 일이 끝난 후에야   이미  숨진 아내가 있는 영안실에 찾아간다.   친구의 아내가  오토마츠를 보고  " 어떻게  아내가 죽어가는  데 달려 오지 않았냐?  " 고 비난한다.   오토마츠는 죽은 아내를 보고도  울지 않는다.      친구의 아내가   "  당신의 아내가 죽었는데....  어떻게 울지도 않느냐? " 며  질책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  나는 철도원이므로 집안의 사사로운 일에 울 수 없다. "

오토마츠는 철도원으로 평생을 보낸 지난 날을 회상하며  "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 라고 말한다.   어느날 오토마츠는   눈이 뒤덮힌 역 플랫폼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철도원 오토마츠는 누구인가?
오토마츠는  회사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원이다.    엄격한 규칙에  길들여진 오토마츠는  융통성  없이  로보트 처럼  일한다.

딸이 죽었을 때도   동료들에게 부탁해 잠시 자리를 비우고   딸을  보러 갈 수도 있다.   아내가 병원에서 죽어갈 때도   회사에 교대 인원을 요청하거나,    휴가를 내 병원에 가면 된다.     그러나 오토마츠는   가족보다 회사 일을 우선시한다.   자신의 권리나 가족의 행복을  기꺼이 희생한다.     일본인은 집단에 대한  충성과 자기희생   신민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오토마츠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요구하지 못한다.    그는  국가나  회사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 본  적이 없다.   무의미한 규율이나   회사 정책을 비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본 사회는 비판이나 항의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토마츠는  자신의 무관심 속에  죽은 딸을  보고도  슬퍼하지 않는다.   자책하지 않는다.  외롭게 죽은 아내를 보고도 울지 않는다.    그는  " 나는 철도원이므로 집안의 사사로운 일에 울 수 없다. " 고  말한다.    일본인은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표현하지  못한다.

오토마츠는     " 철도원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나의  임무요 본분이다 " 는  굳은 믿음을 갖고  살았다.     철도원 신분에 만족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멸사봉공의 자세로  최선을 다했다.     비록   딸과   아내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 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자신도 플랫폼에서 쓸쓸하게 죽지만,  회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철도원 오토마츠는   착한 노예
오토마츠는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포기하고    집단을  위해 사는  착한 노예다.    자신이 노예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그는  자주성 자율성을 잃어버린,   집단에 종속된  존재에 불과하다.      철도원이야 말로  일본 지배층이 원하던  모범적인 일본인이다. 

모범적인 철도원를 본받아야 한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철도원이 보여주는  직장에 대한 헌신,   충성심과 복종심에   매료되었다.   주인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는   자세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자국  국민이    철도원을  본받기를   원했다.   보도사기꾼 기레기들이  앞장서   대대적으로  떠들어댔다.   교수 학자 전문가 같은 종자들도  철도원  찬양에 열을 올렸다.   " 선진국이 되려면  철도원을 배워야한다 " 는 개소리가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특히 노조파업이    일어나면   기레기들이   튀어나와   자국 노동자들을   꾸짖으며   이렇게 울부짖었다.     " 일본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지 않는다,    회사를 먼저 생각한다,   목숨바쳐 일한다, ......  "

국민을 ' 노예 철도원 ' 으로 만들려는   지배 엘리트들의  선동은   대중의 의식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한국인은 일본을 배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