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5일 목요일

일본 회사 문화의 특징

일본 직장인은 사축
직장인은 회사의 개
일본 직장인들은 자신들을 사축이라고 부른다.  사축이란 회사가 기르는 가축이란 뜻이다.  즉 회사에 예속되어 노예처럼 일만 해야하는 길들여진 직장인을 풍자하는 말이다.  이들은 매일 잔업, 야근등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면서 잔업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randstad 조사에 따르면,  <근무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월급이 줄어도 괜찮은가? > 라는 조사에서  일본이 14.1% 로 1위를 차지했다.
한달에 200시간 잔업을 했다. 집에 갈 시간이 없어 사무실에서 잤다

상사가  자주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때렸다
직장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자살한다

100시간이 넘는 잔업과  상사에 시달리다 자살한 여직원

일본 직장인들이 이렇게 일에 시달리며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일본 회사문화 때문이다.
“사원은 상사의 말을 따르는 개다.”라고 말하며 무리한 주문을 한다. “자네가 명령을 거역해서 해고당하면 자네 가족들은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될지도 몰라.”라며 협박한다."  --- < 닥쳐라 일본인 >
그런데 지금 일본 직장인들이 겪고있는 잔혹한 노동 현실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일본 경제가 대 호황을 누리며 거품에 쌓여있던 1980 년대에는 지금 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일했을까?  아니다. 그 때도 직장인들은  지금과 별 차이없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고통받았다.
 
고이소 아카오는  <후지 은행원의 기록>에서 악랄한 상사, 자살, 과로사, 잔업수당 착취등  무자비한 노동 현실을 폭로했다.
" 입사후에 경영진은 사원에게 은혜를 베풀고, 사원은 의리를 지켜야한다. 이것이 일본 기업이 작동하는 구조다..... 일본 회사는 군대식 경영이다. 군대에서 소대장을 오야지라고 부르듯이 지점장을 오야지라고 부른다. 오야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잔업수당을 주지않는다.... "
일본 경제가 고도 성장을 누리던 1970 년대, 그 때도 직장인들은 새벽 부터 밤까지 중노동에 혹사당했다.  사실 그들은  직장인이 아니라 회사의 노예였다.  이런 노예는 어느 나라에도 없을 것이다.
" 직장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맹렬하게 일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영업.  오후 10시 반에 여자 직원이 퇴사하고 11시 반에 영업 사원이 회사에 돌아온다.  새벽 1시 부터 영업 회의.  퇴근 시간은 매일 새벽 2시 에서 4시.  집에는 일주일에 한번 간다.... " --  TV 프로그램 맹렬사원
군국주의 시절인 1920 년대에도,  직장인들은 억압적 노동 현실 속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오랜 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부자연스러운 부담을 지며 비이성적인 체제 아래에서 고통당한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얼음처럼 차가운 아침에 공장으로 달려가고 별을 보며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우리에게 인생을 즐길 틈이란 없다. 우리는 비인간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   --  1922년 노동조합 소식지  --  <일본의 재구성>
옛날 직장인도 사축 
혹사당하는 직장인들이 자신들을 사축이라 자조하지만,  사실 그들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두 사축이었다. 지난 100년 간 그들은  악랄한 상사의 통제와 감시를 받으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잔업 수당을 착취당하며 살았다.

변하지않은 지배계급의 좌우명
이렇게 일본 회사 문화의 특징은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 통제,  강요,  착취,  장시간 노동 등에 있다. 그런데 이런 문화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 에도 시대,  농촌은 강제 노동 수용소와 비슷했다. 농민은 억압과 강제 속에서 고통받았다..... (1649년 농촌 법령에 의해)  농민은 '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저녁에는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라' 는  등 온갖 강요를 받았다. "  ㅡㅡ> <현대 일본을 찾아서>
수 백년 전에도,  그 당시 직장인들(농민)은 아침부터 밤까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혹사당했다.  지배계급은 " 백성은  살게 내버려둬도 안되고 죽게 내버려둬도 안된다 " 는 좌우명 하에 백성을  부려먹었다.

강제 노동 수용소가 오늘날 현대적인 회사로 바뀌고,  지배계급의 좌우명이 기업 경영 철학으로 불리우지만,  종업원의 운명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과거 지배층이 백성을 노예로 부렸듯이,  오늘날에는 직장인을 사축으로 부려 먹는다.

Ref)
일본  노동자들은 일과 직장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  일도 직장도 싫다


2015년 9월 8일 화요일

일도 싫다 직장도 싫다

일본 경제가 최고로 잘 나가던 시절,


일본 제품은 우수한 품질과 기술을 바탕으로 전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소니 워크맨을 비롯해  ‘메이드 인 재팬’ 은 명품으로 통했다.  이런 우수한 품질은  모두 일본 근로자들 덕분이라는 것이 그  당시 상식이었다.  일본 노동자들은 근면 성실하고, 자기 일에 정성을 다할 뿐 아니라, 애사심도 강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그 때 일본 노동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했을까?  또 직장에서 행복을 느꼈을까?

일도 싫다, 직장도 싫어! 
1989년 일본 노동자와 미국 노동자를 비교한 기념비적 연구 논문에 따르면, 지금 일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미국 노동자는 34%가, 일본 노동자는 17%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불만족이라는 대답은 미국 4.5%, 일본 15.9%였다.  만족은 2분의 1에 불과하고,  불만족은 미국보다 3배가 넘었다. 회사에 대한 애사심도  미국인이 일본인보다 약간 앞섰다.

일본이 최고로 잘 나가던 시절에 일본인은 자기 일과 직장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 노동자가 더 만족하고, 회사에 더 충성을 하고, 보람을 더 많이 느꼈다. 

일본인은 장인정신을  갖고 있고, 목숨바쳐 열심히 일하고, 회사에 충성을 바친다....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 이 조사는 그런 상식을 뿌리째 흔들어버렸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일본인들은 자기 일에 만족하고 있을까?
지금도 아니다2014일본인의 직업 만족 지수는 바닥이다. 세계 평균에도 못미친다. 또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직원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주위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을 만큼 자기 회사를 좋아할까?  그것도 밑바닥이다.  자기 직장을 아주 싫어한다.

왜 근면 성실하다고 알려진 일본인들이 자기 일을 싫어할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는 일본인이 직장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감추어진 일본 사회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회사, 토요다 근로자는 이렇게 폭로했다. 
“토요타 회사 시스템은 엄격하다기 보다 전체주의, 파쇼 체제다” ....  "토요다에서는 작업장을 외부와 격리시키고 근로자에게 세뇌 교육을 하며, 규율이 엄격했고,  지시에 절대 복종을 강요했다 " .....   "상사의 말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하면  ' 너 공산당이냐! ' 고 윽박지른다"....   --  < 토요다의 어둠 >
토요다의 어둠 

1. 일본의 초우량 기업이라는 토요다는 사실 전체주의 시스템이다.  그것은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이며 극단적이다. 

2. 토요타 직원에 대한 세뇌 교육은 일상화되어 있고, 사내 규율 역시 매우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개인 생활은 없다.  개인적인 이메일은 금지된다.  상사가 부하의 이메일을  감시한다. 개인적인 인터넷 사용도 금지돼 있다. 실제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다가 3개월 정직처분을 당한 사례까지 있다.

3. 살인적인 노동 시간이 근로자들을 죽음으로 몰고있다. 회사가 심야수당을 줄이기 위해 월 144시간이 넘는 잔업을 시켜 과로사한 직원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죽기 전 남편은 밤새 일하다가 날이 밝아서야 퇴근한 적이 많았다”

토요다 근로자는  사실 노예에 가까운 존재다.  근면 성실한 것이 아니라  그냥 노예 처럼 혹사당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자유, 자율, 권리, 사생활 같은 것은 없다.   명령과 지시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로보트에 불과하다.


르뽀 작가 나카자와일본의 중년 노동자들이 겪는 노동 현실을 이렇게 폭로했다. 
" .... 그것은 악질적인 노동 현장이었다.  21세기 일본에서 이렇게 일을 시키는  직장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가난한 개발 도상국의 어린 아이를 혹사시키는  공장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거기서 노동법 무시,  감금 노동, 노예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았다.... " 







이런 억압적, 강제적 노동현실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일과 직장에만족할 수 없는은 당연하다.  

그럼 옛날에는 어땠을까? 100년 전 노동 현장으로 가보자.
"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부자연스러운 부담을 지며 비이성적인 체제 아래에서 고통당한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얼음처럼 차가운 아침에 공장으로 달려가고 별을 보며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우리에게 인생을 즐길 틈이란 없다. 우리는 비인간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    -  1922년 노동조합 소식지  --  <일본의 재구성>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다. 1920에도 일본인은 자기 일에 만족을 못했다 만족은 커녕 가혹한 노동 현실 속에서  노예처럼 시달리면서 고통스럽게 살았다.

일본은 오랫동안 칼이 지배하던 무자비한 사회였다.  지배계급은 폭력으로, 힘으로 백성을 지배했다.  노예나 다름없던 백성은  절대 복종해야 했고, 엄격한 규율을 지켜야 했다.  말을 안들으면 폭력과 이지메에 시달렸다.

이런 전체주의 시스템은  1000년 지난 지금도 거의 변하지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상명하복,   통제 감시엄격한 규율, 이지메는  아직도 일본 사회를 지배한다.  이런 비인간적인 억압 사회에서 가축처럼 일하는 일본인들이  일과  직장에서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다.


Ref)  일본 직장인이 겪고 있는 어두운 현실

2015년 8월 2일 일요일

일본인의 특징

은폐 조작  날조는  일본인의 뿌리 깊은 습성이다.    일본인은  발각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을 잘못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일상적으로  한다.    역사는 말할 것도 없이,   수 많은 것들을  은폐 조작 왜곡하고 있다.    사실  일본 이미지는    조작  날조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이 싫어요

후지티비 특집 프로그램에서 한국 여고생이 " (일본에) 문화가 많아요. 그리고 외국인이 정말 많이 방문해 주는 것 같아요. "  라고 말했다. 그런데 자막에는 " 일본이 싫어요. 왜냐면 한국에 고통을 주었으니까요."  라고  쓰여있다.  평범한 여고생을 이용해  날조를 한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한국을 지지해줘요
평창 올림픽 유치 비디오에서 김연아가 " 내 꿈을 이루고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준 IOC 위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 고 말했다. 그런데 아사히TV는  "(IOC 위원들은)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도시보다 한국을 응원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날조된 자막을 붙였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김연아의 말을 교묘하게 조작한다.

이건 원전폭발이 아니다.
후쿠시마 1 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나는 화면이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전문가들이 나와 <이것은 원자로 내부 압력을 줄이기위해 밸브를 일부러 폭발시킨 것> 이라고 날조했다.  국민을 속이기 위해 뻔히 보이는 것도 날조한다. 은폐 조작 날조는 뿌리깊은 일본의 특성이다.

한국은 법치 국가가 아냐
방송에서 <한국은 법치국가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전 발표된 2015 세계 법치국가 순위에서 한국 11위에 일본은 13위에 올라있다.  한국을 비하하기 위해 보이는 것마다  날조한다.

축구는 한국이 기원
지상파 민영방송 TBS는 < " 한국에 라이트 형제보다 300년 더 빠른 비행기 기록이 있다, 축구도 한국이 기원이다 " 라고  한국이 주장한다 > 고  거짓 방송을 했다.  국민에게 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닥치는 대로 날조한다.

한국 여행은 자살 행위
bucchinews가 <한국·스페인 여행에  조심> 이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날조했다.
" 2020년 도쿄올림픽 결정으로 화가 난 한국인들이 일본 관광객을 해칠 우려가 있다.... 일본인을 습격할지 모른다.... 지금 한국에 여행가는 건 죽으러 가는 것.... 조심하라..."
반한 감정으로 국민을 세뇌시키고 한국에 여행가는 것을 막기위해  있지도 않는 사실을  멋대로 조작한다. 

한국에서 일본인 사냥
석간후지 신문이 < 한국 경제가 나빠지면서 일본인 사냥이 마구 일어나고 있다. 3, 4명의  젊은이들이 일본인을 찾아 방망이를 들고 거리를 떠돌고 있다.... 치안이 무너지고 있다.... 일본인이 탈출하고 있다...> 고  날조했다.  판타지 만화같은 날조를 서슴없이 한다.


컬트 종교 집단처럼  온나라가  거짓말, 날조를 주댕이에 물고 미쳐 날뛴다.  이들에게 양심이란 것이 있는걸까?  참으로 희한한 싸이코들이다.  왜 이러는 걸까?   국민성에  무슨 문제가 있는건가?

거짓말 날조는 일본인의 특징
한국인들이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수백년 전에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다.  선교사 로드리게스 rodrigues 는 이미 수백년 전에 일본인을 관찰하고 다음과 같이 특징지었다.
 " 일본인은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입에 물고 있는 거짓 마음,,,  자기만 알고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숨겨진 마음을 갖고 있다 "
미얀마 여자 --  일본인 속마음은 알 수 없다
토쿄신문은 <속이고 싶은 국민> 이라는 기사를 통해 거짓으로 만연한 일본 사회를 꼬집었다. 이 신문은 제대로 속인다면 별 문제가 없다는 풍조가 일본 사회에 퍼져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본에는 이렇게 거짓말 날조 왜곡이 많은 걸까?
"일본인은 죄의 중요성보다 수치의 중요성에 무게를 두고있다. 일본은 수치의 문화이며 치욕을 원동력으로 한다"  - -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일본인의 정신 세계에는 죄의식이 별로 없다.  즉  도덕률이나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양심에 가책을 크게  느끼지 않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없이 거짓말을  내뱉는다.   

일본인은 제대로 속일 수만 있다면(들키지만 않는다면)  거짓말 날조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능숙한 거짓말을 훌륭한 재주로 본다.   사회 풍조 자체도 거짓말을 대수롭지않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일본인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이유다.  
거짓말 잘하는 나라 순위 - 일본  4위 (사실은 세계 1위)
거짓말을 해서 상대방이 속아 넘어가면 뛸듯이 기뻐한다.  그러나 거짓말이 발각되어 주위에 알려지면  비로서 수치심을 느끼고  자책한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은폐, 왜곡, 날조를 필사적으로 한다.

이런 거짓말 문화 culture of deceit 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있다. 일본에는 " 거짓말도 방편이다. ",  "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된다 ",  " 진실을 말하면 바보다. 거짓도 진실도 말하지 말라 "  라는 속담이 있다.  이런 거짓말에 관한 속담이 100개가 넘는다.  그만큼 거짓말 풍조가 사회에 널리 퍼져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Ref)  거짓말이 판치는 일본 사회

2015년 6월 2일 화요일

일본인은 한자를 많이 알고있다?

오래 전 일본에 관한 강연회가 열렸다.  그런데 강연 주제와 다르게 강사는  한자 타령을 늘어 놓았다.  ㅅ대학에서 교수를 해먹는다는 자는 이렇게 떠들어댔다.
.... 일본에 갔는데.... 선진국 이라는 걸 금방 느끼겠더군요.... 문화가 활~~짝 피웠어요.. 일본이 저렇게 잘사는 이유가 뭔지 압니까?...  일본 아이들  IQ가 세계 최고인 이유가 뭔지 압니까? ... 그  원인이 다 한자에 있어요.... 초등학교 때 이미 1,000 자를 떼요. 세계 최고의 독서율이 다 한자 덕분예요...
그런데 한국은 한자를 버리고 있으니.... 대학생들이 부모 이름도 한자로 못쓰니....  한자를 안쓰니 국민 수준이 천박해지고... 이래서야 어떻게 일본을 따라갈수 있을지.......
이게 정말일까 ???.   도대체 일본 사람들이 한자를 얼마나 많이 알기에,  교수라는 작자가 저렇게   헛소리를 대놓고 하는걸까?

한자 대국 일본?
한자 장사꾼들은 일본이 한자 대국이라고 떠들어댄다.  그래서 그런지 신문, 잡지, 서류뿐 아니라 간판등 온 나라가 한자로 뒤덮여있다.  한자를 모르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국민의 한자 실력
그럼 이런 나라에서 사는 평범한 일반인들은 한자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고등학교 까지 2000자 정도 배운다니까.... 평균 2000자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회사원 200명을 상대로 한자 읽기 실력을 조사했다.....  早急(조급) 을  틀리게 읽은 사람이 28.5% 였다...... 심지어  年俸(년봉)을 틀린 사람도  5% 였다...... 한자를 올바르게 읽을수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19% 에 불과했다....  
정확한 자료가 없지만,  일반인이 읽고 쓸수 있는 한자는 평균 몇 백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1,000자에 훨씬 못 미친다고 한다.  그런데 몇 백자만 알아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불편하지 않을까? 불이익을 겪지 않을까?

일반인들은 신문이나 잡지 같은 인쇄물을 거의 안 읽는다.  또 어려운 한자에는  발음 기호가 붙어 있다.  보통  TV 뉴스에도 발음 기호가 적혀있다.  명함을 주고 받을 때도 한자 이름에 발음을 달아준다. 그래서  이 정도만 알아도, 나머지는 감으로 대충 짐작하고, 그럭저럭 살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인터넷, 스마트폰 때문에 한자 실력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한자능력 조사에서 한자 쓰기에 자신이 있냐는 질문에 2% 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조사가 보여주듯이  일본인 중에  한자를  제대로 읽고 쓸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자는 더이상 배우고 싶지않다. 히라가나를 사용하면 된다
지배 엘리트의 한자 실력
일반 국민은 그렇다치고, 엘리트라는 자들의 한자 실력은 어느 정도 일까?
아베 총리는 일본의 엘리트  정치인이다.  귀족 가문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당연히 누구보다 한자를 많이 알고 있을거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아베 총리가 국회 답변 중 입을 열어 소리를 내며 원고 읽기 연습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아베가 읽기 연습을 하는 이유는 뭘까? 
아베가 보는 원고에는  발음기호인 후리가나가 달려있다.  국회, 경찰, 순시선등 중학생 수준 한자에도 발음기호가  달려있다. 즉 아베의 한자 읽기 실력이 별로라는 뜻이다.  자신 없으니까 실수하지 않도록 일일이 발음을  달아 놓은 것이다.
또 아베 총리는 한자를 잘못 썼다고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아소 다로 전 총리는 아베와 쌍벽을 이루는 세습 정치인이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미국 유학까지 마친 엘리트다. 그도 한자를 잘못 읽는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글자도 못 읽는 아소 총리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TV 아나운서들도 걸핏하면 한자를 잘못 읽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데...  쓰기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엘리트라는 자들도 한자가 어려워 헤메기는 마찬가진 것같다.

한자 장사꾼들이 일본을 찬양하며 한자 타령을 하지만,  일본이 한자를 배우는 이유는 일본 문자에 심각한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허접한 히라가나 만으로 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자가 좋아서, 우수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 한글과 같은 우수한 문자가 있었으면,  일본은 진작에 아무 망설임 없이 한자를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이다. 

Ref)
한자가 너무 어렵다.....  더 이상 배우고 싶지않다....   --- Can Japanese actually write kanji?
일본인의 3분의 1은 일본어를 읽을 수 없다  --   日本人のおよそ3分の1は日本語が読めない
한자를 쓸 수 없는 점원이 많다  ---  漢字が書けない. 低レベル店員

2015년 5월 2일 토요일

일본인의 시민의식

2011년 3월 일본에서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자 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레기를 비롯한 사이비 지식인들이  일제히  소리높혀 울부짖기 시작했다.
.... 대지진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침착하고 질서정연하며 남을 배려하는 일본인들의 시민의식 ..... 일본 국민들이 보여주고 있는 높은 질서의식과 행동은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준다.......  쇼핑센터나 편의점 등에서 수백명이 차례로 줄을 서서 질서를 지킨다. 새치기나 약탈은 전혀 없다......  지진보다 더 무서운 일본인의 시민의식 ..... 일본에게 우리는 배워야한다!!...
이게 정말일까???    일본 시민의식이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줄 만큼  그렇게 대단했을까? 
그 때 일본에서는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지진보다 더 무서운 일본인의 시민의식?
7/11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훔치고 있다.

대형 수퍼마켓 창고에서 차를 대놓고 물건을 훔치고 있다.  창고 물건이 모두 털렸다.
미야기현 가게 주인   "  돈과 물건을 모두 훔쳐 도망갔다. "

 음료수  벤딩머신이 부서지고 돈이 없어졌다.
가게 안에 있는 ATM이 부서지고 현금이 도난당했다.

대형 마트에서 약탈이 일어났다. 진열된 물건들이 모두 도난당했다.

센다이에 있는 기린 맥주 공장에서 약탈이 일어났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맥주, 커피, 주스등 창고 안에 있는 물건을 몽땅 훔쳐갔다.
시민의식이 높다는 일본인들의  사재기 


여자들이 강간 당했다. 후쿠시마에서 강간 사건이 없었다면 그거야 말로 이상한 일이다.

찌라시,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일본인의 시민의식 실제로 벌어진 일들아 ~ 주  다르다.  시민의식 비슷한 것도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본에 대한 수 많은 것들이 은폐, 축소, 날조, 위장되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  그런 것은 없다
2014년 12월 20일 신주쿠 역에서 전철에 사람이 부딪혀, 선로에 떨어져 사망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이 장면을 찍고 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뭐하는 짓인가?  시민의식은 커녕 기본 상식도 없는 인간들이다.

몇년 전 특급 열차  안에서 강간이 일어났지만 40여 명의 승객중 누구도 말리거나, 비상벨을 누르거나, 신고하거나,  경찰에게 증언하지 않았다.  시민의식 비슷한 것도  없었다.

도쿄 길거리를 자랑스럽게 누비고 다니는 종자들을 보라.  몇년 동안  대낮에 저런 짓을 하고 다니는데도  어느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다.  참으로 미개하고 천박한 무리들이다.   시민의식 같은  것은 없다.
양처럼 길들여진 일본인
지난 1000년간 일본은  칼있는 자가 칼없는 자를 찍어누르고, 힘없는 자가 힘있는 자에게 목숨을 구걸해야하는 약육강식 시대였다. 권력을 쥔 깡패들이 총, 칼과 폭력으로 백성을 지배한 잔혹한 시대였다.  노예나 다름없던 백성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규칙과 질서를 지켜야 했다.   (권력자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질서있게  행동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야했다.  이렇게  길들여진 행동이 마치 질서의식, 시민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역사상  한번도 시민 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는 나라에,  그래서 시민사회가 형성된 적이 없는 나라에,  시민의식이 있을 리가 없다.

2015년 4월 1일 수요일

일본인은 예의 바르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이 예의 바르다고  말한다. 인사도 깍듯이 잘 한다고 한다.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들의 77%가 일본인의 장점으로 예의바름을 뽑았다.

진짜 일본인이 예의 바른가?
일본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일본인이  듣던대로 예의 바른가?> 라고 물어보았다.  6명 정도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10명 정도는 아니다, 혹은 '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고 대답했다. 즉  예의바른 일본인도 있지만,  <알려진 것 만큼은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생각보다 외국인들의 평가가 나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프랑스 여자가  이것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했다. 
일본인은 매우 예의바르지만, 한방향 이다.  즉 고객이나 상사에 대해서는 모두 예의바르지만,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부하에 대한 예의가 있는 사람은 적다.  원래  예의란 쌍방향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의란 무엇인가? 
아베 총리가 미 상원의원에게  아주 예의바르고 공손하게 인사하고 있다.  무릎과 허리를  굽히고 손까지 내보이는 극도의 예절을 보이고 있다.  비굴한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 태국 총리를 맞이할 때는 전혀 다르다(아래).  아주 대조적이다.
즉 아베는 사람에 따라, 나라에 따라  다르게 인사를 한다. 이것은 예의 바른 것과 관련이 없다.  이것은  상대가 강자인가 약자인가와 더 관련이 있다. 나보다 강한 존재에게는 무릎을 꿇고 조아리는 굴종의 문화를 보여준 것일 뿐이다. 사무라이가 지배하던 나라에서 예의란 강자에 대한 복종을 의미할 뿐이다.  

무릎꿇고 빌어! --  오리지날 일본식 예의
평소 예의 바르게 보이는 일본인들이 예의와는 거리가 먼  짓거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 볼링장에서 여자 손님들이 서비스가 마음에 안든다고,  종업원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일본 삿포로  가게에서 손님이 종업원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패밀리 마트 종업원에게 무뤂 꿇고 빌라고 협박했다.

위에서 보듯이,  일본인은  (약자인) 종업원이 실수를 하거나 약간의 불편함이나 손해를 끼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다.  자기가 갑의 위치에 서면 약자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강자에게 무릎꿇고 빌고, 약자에게  똑같은 짓을 강요하는 것이  바로 일본식 예의다.  이렇게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일본인의 예의나 매너는  크게 달라진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예의
대만 기차 안에서 일본 여자가 승무원에게 욕을 하며 난동을 부리고 있다.  이 여자는 일본 기차 안에서는 얌전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만(다른 상황)에서는  예의 없이 천박하게 행동한다.  평소 예의바르고 공손해 보이는 일본인이라도,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돌변한다.
일본인은 미얀마 사람을 깔본다
일본인의 예의 = 길들여진 행동
일본은 오랫동안 칼이 지배하던 무자비한 사회였다.  지배계급은 폭력으로, 힘으로 백성을 지배했다.  사무라이는 백성이 무례하게 굴면 베어 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 면책권(기리스테고멘)을 갖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예나 다름 없던 백성은  (강자 앞에서)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습관을 몸에 익혔다.  이런 길들여진 행동이 예의 바르게 보이는 것이다.